티스토리 뷰

늑대와 양피지/1권

제1막

(◉◞⊖◟◉) 2017. 3. 27. 02:27


 여행의 날이지만 겨울임에도 드물게 맑았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푸른 하늘이 보이고, 쌓인 눈에는 햇빛이 비치며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북녘 땅에 위치한 온천 마을 뇨히라의 겨울에서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림 같은 멋진 여행의 날이 되었지만, 여기에 운을 더 써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들기도 한다. 그러나 길고 긴 무뚝뚝해 보이는 여행의 외투에 눈을 돌리자 여행을 떠나는 성직자가 되었음을 새삼 느낀다. 이 날씨는 하나님이 내려준 전도의 축복이 틀림없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에는 강이 흐르고, 부둣가가 위치해있다. 환절기에는 온천 목적으로 방문하는 손님들, 돌아가는 손님들로 무척이나 붐비지만, 지금은 화물선 한 척만이 정박해있을 뿐이다.
 화물이 실려있는 배 한가운데에는 배가 침몰할까 조마조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살이 포동포동 찐 중년의 수염을 기른 남자가 있다. 하지만 생긴 것과 달리 몸놀림이 무척 가볍고 순식간에 작업을 마치려 하고 있다.

『잠시 후 출항이다!』

 이쪽을 바라보고 말을 했기 때문에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대자루를 어깨에 맸는데 무겁게 느껴졌다. 이 여행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콜, 두고 가는 건 없지?』

 이름이 불리자 뒤를 돌아보았다. 걱정이 되어 자신의 짐을 몇 번이나 챙겨보고 있는 이는, 자신이 십 년 이상 신세를 지고 온 여관이 주인 크래프트 로렌스였다.

『여비, 지도, 식량, 방한구, 약초, 단검, 부싯돌도 종류별로 챙겼고?』

 한때 행상인으로 세계를 돌아다녔던 로렌스는 여행 준비를 도와주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장님, 그만큼 확인했으면 된 거예요. 자루에 더 이상 들어갈 공간도 없어요.』

 로렌스의 옆에 있던 여자가 기가 막힌듯한 웃음을 띄며 말한다. 로렌스가 운영하는 여관 【늑대와 향신료 정】에서 주방을 맡고 있는 한나였다.

『아아, 그런가. 으음.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로렌스 씨. 옛날에는 청어 1마리와 낡은 동전을 쥔 채 돌아다니며 여행을 했었으니까요.』

 로렌스를 만난 것은, 10여 년 전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대학 도시에서 학문을 수련했던 방랑 학생이란 이름이었으나 구걸과 다름없는 여행을 했을 때의 일이다. 여행 도중 사기를 당해 돈도 떨어지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이국땅에서 손해를 볼 참이었다. 그때 운 좋게 만나 도와주었다.
 10년, 아니 15년 전 일이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 물음표가 붙는다. 눈 앞의 로렌스는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여전히 젊은 탓에 자신도 아직 소년으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든다.
 여하튼, 헐렁한 마대자루를 끈으로 묶고 있는 손은 여관에서의 육체노동 덕에 오히려 강해졌다.
 어린 시절 작았던 키는 자라나 큰 키가 되었고, 예전에는 은빛에 가까웠던 머리색은 금색이 되었다. 시간은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제대로 흐르는 것 같다.

『으음, 그래, 그렇지... 하긴 지금의 너는 무수한 성직자들이 경의를 표하는 젊은 학자이기도 하지. 나도 콧대가 높지만 한밤중까지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은 본받고 싶을 정도니까.』
『그거 꽤 괜찮은 생각이네요, 사장님. 하지만 콜씨처럼 행동한다면 마늘과 양파를 사두기만 하고 창고에 방치해두는 시간이 늘어날 테니까, 그만 두시라고 말씀드릴게요.』

 로렌스의 말은 꽤나 낯간지러웠지만, 한나의 말에는 고마웠다.
 공부는 항상 낮에 일을 마친 뒤에 했다. 그래서 사본 제작 및 신학 서적의 묵독은 졸음과 싸워야 했다. 생양파와 마늘을 까면서 잠에서 깨기 위해 노력했고, 이 때문에 한나는 요리에 쓸 재료가 부족하다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아아, 그렇겠지. 10년 동안. 그동안 일을 맡아줘서 정말 고마웠다. 우리 온천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콜 덕분이었어. 정말 도움되었다.』

 로렌스는 그 말을 마치고 팔을 벌려 다가와 아버지처럼 힘껏 껴안아 주었다. 그러나 로렌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쪽은 이쪽이었다.

『저야말로.... 이렇게 바쁜 계절에 여행을 떠나버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이야. 오랫동안 여관에 붙들려 있었지 않나. 다만, 남쪽으로 가서 큰 성공을 한다면, 우리 온천 광고를 부탁한다.』

 장사꾼으로써는 본받을만한 로렌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이런 모습은 이쪽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 집 여자들이 배웅 오지 않은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호로씨라면, 일주일 전에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배웅하러 나오신다면 분명히 저를 말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호로는 로렌스의 아내로, 자신의 친누나와 같은, 때로는 두 번째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하기사, 그 녀석은 널 끌고 데려갈 성격이긴 하지.』

 로렌스의 쓴웃음이 끝나고 나온 것은 한숨이었다.

『뮤리 때문에 수고했어.』
『아뇨....』

 그렇게 부정하려 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 소란을, 특히 어제저녁의 일을 떠올렸다.

『실은... 물려버릴 듯한 표정을 짓다가, 최후에는 문자 그대로 물려버렸죠.』
『정말이지』

 로렌스는 두통을 참아내듯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뮤리는 로렌스와 호로의 하나뿐인 딸로, 늘 변방 중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온천 마을에서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 상황에서 자기가 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뮤리와 호로는 기가 세긴 하지만, 호로는 나이가 있어 체념과 분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하지만 뮤리는 한여름의 태양과 같은 아이니까.』

 하나뿐인 딸을 정말 소중히 여기지만, 뮤리의 말괄량이와 같은 성격은 로렌스에게 두통을 안겨준다. 최근에는 조금 안정되었지만 어릴 때에는 산에 놀러 가서는 피투성이로 돌아올 때가 몇 번 있었다.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날아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거 보니까, 산에 올라가 곰 상대로 퉁퉁 부어있는지도 모르겠네.』

 뮤리가 매달려서, 굴속에서 짜증과 함께 귀찮아하고 있을 곰을 상상하고 웃어버렸다.

『여행 중에 자리를 잡으면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그때 다 같이 오세요.』
『그렇게 해. 다만 가능한,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으로 부탁한다. 두 사람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여행을 하려면 굉장히 힘들거든.』
『그럴게요.』

 웃으면서 대답하자 로렌스는 쑥 오른손을 내밀어왔다. 그 모습에서 고용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십여 년 전, 아이였던 자신을 구해주던 은인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것은 여행을 떠나는 손님을 배웅하러 나온 여관의 주인이 내민 악수였다.

『조심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 한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로렌스는 일부러 미소 지으며 강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생수와 식사는 항상 신경 써서 조심히 먹도록 해요.』
『한나 씨도... 건강하세요.』

 코맹맹이 소리를 최대한 숨기면서, 여기 있는 모든 이들과 악수를 하고, 마대자루를 둘러메었다.

『이-봐, 슬슬 출발한다고!』

 뱃사공은 배려를 해주고 있었는지, 상황을 보고 말을 걸어왔다.

『지금 갑니다!』

 대답을 하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앞으로 몇 년 또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수증기가 곳곳에서 올라오는 마을, 뇨히라를 마지막으로 보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로렌스가 어깨를 톡 두드렸다.

『자, 어서 출발해 꼬맹이.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거야!』

 여기에 답하지 않으면 거짓이 될 테지.

『꼬맹이란 말은 그만두시죠. 처음 만났을 때의 로렌스 씨와 비슷한 또래의 나이거든요!』

 첫발을 내딛자, 두 번째 걸음은 곧 따라 움직였고, 세 번째 걸음부터는 의식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로렌스는 뒷짐을 진채 평온한 미소를 짓고, 한나 씨는 손을 쉬지 않고 흔들고 있었다. 시선을 조금 돌려 멀리 뇨히라의 마을 풍경을 보자 서운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딘가에 말괄량이 뮤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에서 토라진 모습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고집은 엄마를 고스란히 닮았다는 생각에 작은 웃음을 짓고, 부두로 향했다.

『작별 인사는 끝냈나.』
『기다리게 했군요』
『뱃일을 하다 보면 자주 있는 일이지. 다만 같은 강의 물줄기는 흐른 후엔 두 번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아. 미련이 남는 것도 당연한 거야.』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서 배를 조종하면, 자연스레 지혜로워 질지도 모른다.
 뱃사공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부두에서 배를 향해 뛰어 올라탔다.

『손님은 너 한 사람뿐이다. 모피 더미 위에서 낮잠이라도 자 두도록』

 부두에 배를 묶어둔 밧줄을 풀면서, 뱃사공이 말을 건넸다.
 모피 더미라는 말에 문득 기억이 되살아난다.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다.
 한 행상인이 있었다. 어느 마을에 들린 그는, 평소대로 자신의 마차에서 밤을 보내고자, 화물로 있던 모피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용모가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고, 자신의 고향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소녀는 달빛 아래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황갈색 머리와, 사람이 아닌 큰 짐승의 귀를 가지고 있었고, 허리에는 모피 중에서도 아주 빼어난 최상급의 털이 달린 꼬리가 자라나 있었다. 스스로를 현랑이라고 칭하며, 마을의 보리를 잉태하고 풍요를 관장하였던 신이며 수백 년의 긴 세월을 살아온 늑대의 화신이라고 말했다. 행상인은 그 아가씨의 부탁을 듣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 후 두 사람은 동고동락하며 마음을 키우다, 마침내 행복하게 살게 되었던 것이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모피 더미 속에 손을 넣고 더듬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배위에는 모피 외에, 숯이 담긴 마대와 나무통들이 빽빽하게 쌓여있다. 나무통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숯불을 만들며 나온 송진들이다. 방부제나 방수를 위해 바르는 것으로, 강렬한 탄 내가 조금씩 감돈다. 이 모피들은 뇨히라로 산속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에서 보낸 것으로, 겨울철 동안 산속의 주민들은 사냥을 통해 모피를 얻고 판매함으로써 마을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얻는다. 그들은 마을까지 모피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에, 뇨히라로 보내진 후 배를 통해 운반한다. 숯과 나무에서 채취한 송진도 그런 상품들 중 하나다.

『올해는 모피가 상당히 많네요.』
『하하, 사업이 잘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지. 뇨히라는 옛날부터 크게 번성했고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지금은 뇨히라 뿐 아니라 어디서나 분주하거든. 북쪽 지방 일대와 남쪽의 교회 간의 전투가 몇 년 전에 끝이 나서 일까나. 사실 명분이 부실했던 데다 엉터리로 싸워대니 제대로 끝날 리가 없었지.』

 뱃사공은 구구절절 이야기하더니, 묶여있던 밧줄을 풀고 자신도 뛰어 배에 올라탔다.
 배는 신기할 정도로 흔들리지 않았다.

『자, 이제 배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여행이 시작되네.』

 뱃사공은 선미로 가 장대를 잡았다. 배는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며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갔다. 뇨히라는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는 평범한 날이지만, 배 위에서 바라보는 뇨히라는 색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나그네로서 처음 혹은 마지막으로 보는 뇨히라일수도 있다. 그리고 강가에는 배웅하러 나왔던 로렌스와 한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로렌스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한나는 잘 된 요리를 바라볼 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모습이 시선에서 사라졌다. 산속에 위치한 강이므로 물의 흐름이 빠르다.

『자, 이별은 이제 끝. 이제부터는 앞을 볼 차례다.』

 한참 동안 마을 쪽을 바라보자 뱃사공이 말했다. 강요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을 격려하는 듯, 상냥한 말투였다. 조금은 쑥스러워져 뱃사공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인 후 앞으로 돌아섰다.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자, 외로우면서도 두근두근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모피 더미를 뒤지던 거 같던데, 쥐라도 있던 건가?』
『네? 아아... 실은 오래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행상인과 늑대 정령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곳에서나 있을 법한 기담이지만, 뱃사공은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항해를 하다가 지루해질 때, 댁의 그 이야기로 시간을 보낼 기회가 생기니까. 이야기의 종류도 하나 늘고 말이야.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고 모피 속을 뒤적이다니, 젊은 친구가 미신을 믿는나보구만.』

 아마 그 이야기가 실화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늑대의 딸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하면, 자신의 간을 내보일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의 행상인은 로렌스로, 화물 속에 숨었다는 늑대는 로렌스의 아내 호로일 것이다. 자신은 그들의 기적 같은 여행에 동행했었다.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대모험을 도왔다.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하고 소름이 돋는 경험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이야기에 휩쓸렸던 시절, 가장 놀랐던 이야기를 말하자면, 그런 피가 끓고 가슴 뛰는 일이 아니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이야기..... 가 아닌 이후 함께 생활하며 본 것들이었다. 정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가 계속해서 이어지다니, 놀라움을 넘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넨 어디까지 가는가. 일단 스베르넬이라고 말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만.』

 뱃사공이 말한 곳은 서쪽 아래로 흐르는 강의 중간쯤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 나타나는, 모피와 호박의 무역을 통해 오래전부터 명성이 자자한 도시의 이름이었다.

『우선 그곳으로 가서 여행의 정보를 모은후, 레노스로 향할 예정입니다.』
『호오, 레노스! 그곳도 분명 큰 강을 낀 도시였지. 큰 배가 오고 가는 만큼 관문이 많을 텐데.』

 알고 있다. 자신은 그 강의 관문에서 로렌스를 만났다.
 꽤나 그리워서, 지금은 어떤 형태로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렇군. 어떤 이유에서 가는 거지. 직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상인인가.』
『아뇨』

 작게 머리를 흔든 후 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그곳에 있을 누군가를 향한 맹세 때문이다.

『성직자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무려 성직자란 말인가. 그렇구먼.』
『아직 수습조차 하지 못해서 정말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그러니 신의 가호를 믿어야겠구먼』

 확실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윈필 왕국에서 큰 싸움을 벌이던 중 대단한 사건에 휘말렸다고 하던데.』

 뱃사공이 장대를 깊은 강바닥에 꽂자, 배 앞이 핑 돌면서 큰 바위를 피했다. 뇨히라는 산골 마을이었기 때문에 주위의 전망이 강변만큼 좋은 것은 아니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쌓인 눈 위, 사슴 한 마리가 신기한 듯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 아시는군요.』
『강에는 물 이외에, 정보라는 녀석도 흘러 다니거든.』

 득의양양하게 이야기한 것은 일부러 한 것일 것이다. 쾌활한 사람이니까.
 윈필 왕국은 이 강의 서쪽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마주하는 바다에서 남서쪽으로 더 가면 마주치는 커다란 섬나라다. 특산품으로는 양털이 있으며, 최근에는 배의 건조도 왕성하다고 한다.
 그 윈필 왕국은 세계의 신앙을 통치하는 교회의 교황과 정면으로 대립한 지 수년이 지났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사건의 발단은 세금과 관련된 이야기라지? 물건을 운반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소식을 듣는 것이 중요하거든.』

 배는 강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사이사이에 많은 영주의 땅들을 통과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관문에서는 세금을 매겨 징수한다. 큰 강이라면 적어도 50개에서 많으면 100개가 넘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또한 영주는 자신의 영지 밖에는 세금을 걷지 않지만, 교회는 그들의 가르침이 퍼지고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에서든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실상 전 세계에서 거둘 수 있으며, 그것을 "십일조"라고 부른다.

『교회의 십일조가 사라지면 우리야 고맙지. 게다가, 원래는 이교도와 싸우려고 모으던 세금이지 않나. 그 전쟁이 끝나면 그 세금을 낼 이유가 없지. 그래서 윈필의 왕을 칭찬하는 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있다네.』

 세금은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들이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겠다는 왕을 나쁘게 말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논리적인 왕에 대해서 교황님의 처신도 그래. 정말이지 윈필 왕국의 왕이 최선을 다해주지 않는다면.....』

 라며 거기까지 말한 후, 뱃사공은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배에 태우고 있는 사람이,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거 미안하네, 자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나쁘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어.』
『괜찮습니다.』

 짧게 대답하고, 작게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멍하니 서있는 뱃사공 뒤편으로 올라오는 차갑고도 맑은 바람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교황님이 세금 징수를 강요하기 위해 대화가 아닌, 왕국의 성무 정지를 중단을 선고한 것은 저도 믿기질 않거든요.』

 토해낸 숨이 새하얗게 피어오르는 것은, 분노 때문일까. 성무 정지란, 그 땅 일대에 있는 교회의 모든 성직자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라는 교황의 명령이다.

『윈필 왕국은 3년 동안 갓난아이의 세례도,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혼식도, 소중한 사람의 장례식도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의식들이지만 교황의 명령으로 정지된 상황이죠. 신의 은총을 원한다면 세금을 내라고 주장하다니, 저는 그것이 신의 뜻에 부합하는 행동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배움이 부족하고 힘도 없는 몸이지만....』

 목에 걸어놓고 가슴에 항상 위치하게 해놓은 교회의 문장을 본뜬 나무 세공을 힘껏 쥐었다.

『저는, 왜곡되어버린 신의 가르침을 바로잡는 일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세금 때문에 지난 3년간 영혼의 구제를 소홀히 한 오만한 교황으로부터, 윈필 왕국을 구할 수 있도록, 또 신의 가르침을 바로잡기 위해 싸워야 한다. 자신은 이것을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고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배운 수많은 지식들이 있으며, 로렌스나 그의 아내 호로등, 말하자면 동화 속에 등장하는 기적도 직접 보고 느꼈다. 자신도 반드시 할 수 있으리라.
 불합리하고 무자비한 이 세계에 조금이나마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렇게 맹세했다.
 따듯한 하나님,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눈을 감자, 천사가 뺨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한층 강하게 바람이 불었다.

『흐음...』

 라는 뱃사공의 한숨소리가 들리자,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그런 뜻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야, 나는 힘들게 뇨히라에서 일하는 동안, 온천에서 먹고 마시고 하는 성직자가 부럽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뱃사공의 노골적인 한마디였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산골짜기까지 오려면 상당한 여비와 몇 달 동안 일을 내팽개치고도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지위가 필요할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만족할 수 있는 인물들은 은퇴한 대상회의 주인이거나, 통치를 잘하는 귀족이거나, 고위 성직자 정도일 것이다.

『물론, 그런 이유에서 성직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통탄할 일이지만....』
『"조카(甥)"나 "조카딸(姪)"이 있는 성직자들도 드물지 않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지만, 사공만 특별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는 아니다. 그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성직자는 독신으로 살아야 하며, 아내가 없으니 아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조카와 조카딸이 있는 것이다. 교황도 예외 없이 조카딸이 윈필 국왕에게 시집을 가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악폐습이 광범위하게, 그리고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가를 알 수 있다.

『세상이 좀 더 정직하고, 올바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 것이니까 교황님이 돈을 목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버리게 해야죠.』

 뱃사공은 떠보는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는 건, 자네는 뇨히라에 있으면서 무희들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설마 그런 일이 없었을까? 라며 던진 질문이었지만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다.

『물론입니다.』
『아아, 그런가...』

 뱃사공은 말문이 막혔다.
 다만 그런 반응은 익숙하다. 직업적인 성직자도 금욕의 맹세를 지키는 것은 극소수다. 제대로 금욕을 지키는 것은 외딴 수도원에서 어떻게든 몸무림 쳐도 여자와 맞닿을 수 없는 수도사 정도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 금욕의 맹세를 깬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어기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사공은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무희와 악사 아가씨들이 유혹 해온 적이 확실히 있었지만, 그것은 놀림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는 노력하고 지켰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다짐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리를 곧추세우며 그렇게 말했다.

『흐음. 그렇구먼.』

 사공은 진지하게 중얼거린 후, 뱃머리의 방향을 홱 바꿨다.

『하지만, 세상은 이 강과 같은 것일세. 쭉 뻗기만 해선 안되지.』

 뒤돌아보니 사공은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상을 말하는 젊은이를 비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많은 것을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은자의 얼굴로도 보였다.

『때로는 휘기도 해야 거기에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것이라네.』

 뱃사공이라는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은지, 존재하는 것에 함축성을 더한 말을 잘한다. 사실, 규율을 깨트리고 속세에 물든 후 진리에 도달했다는 유명한 신학자도 있다.

『물론, 자네의 이상을 비웃고 싶은 생각은 없네. 더욱이 성직자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지. 다만, 올바르게만 가더라도 모르는 것이 나오기 마련 일 걸세. 방황을 해야 얻는 경험이라는 녀석도 있는 거지.』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라는 솔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뱃사공의 말에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즉?』

 뱃사공은 왠지 기분 나쁜 듯 코끝을 긁었다.

『음, 그러니까 말이다. 자네가 하는 그 여행의 목적과 의미는 훌륭한 것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아아, 설마 그 정도로 굳은 결의를 한 줄은 몰랐거든. 내가 쓸데없는 말을 괜히 했나....』
『네?』

 되물은 직후였다.

『어떤 일이든, 되돌릴 수 없는 일도 있다네. 어이, 이제 나와도 좋아.』

 뱃사공은 화물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시선은 모피 더미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나무통으로 향해있었다. 직후 덜컹!이라는 소리와 함께 나무통의 뚜껑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어이쿠』

 라는 말과 함께 뱃사공이 뚜껑을 잡아냈다. 나무통 속에는 무뚝뚝한 여행용 신발을 신고 있는 긴 다리가 우뚝 뻗어있었다. 곤란한 듯 웃고 있는 뱃사공의 뒤편을 향해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으ㅡ! 으으!』

 이런 신음소리와 함께 나무통의 가장자리로 손이 빠져나오며 덜컹덜컹 흔들렸다.

『이야아아앗 ㅡ』
『뮤리!?』



 나무통에서 빠져나온 소녀는 모피 더미를 걷어차고, 이쪽의 가슴을 향해 뛰어들어왔다. 재에 은가루를 섞어 놓은 듯한 기이한 색상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가냘픈 몸매의 소녀였다. 나이도 10세 정도로, 아직 여자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이르다. 이런 뮤리였지만 기운만큼은 좋아서, 그 기세에 밀려 넘어지자 배가 좌우로 흔들렸다. 배가 뒤집어지지 않은 것은 뱃사공의 팔힘 덕분일 것이다.

『어, 뮤, 뮤리, 어, 어째서ㅡ』

 여기에 있는 거냐, 라거나, 어떻게 타게 된거냐, 라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힘껏 매달린 소녀, 뮤리는 나무통속 냄새가 역겨워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는지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혀있는 채로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여행에 데려가!』

 대지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얼굴에 떨어졌다. 나무통 속에서 어떻게 뮤리가 나온 걸까라던지, 아무래도 사공과 짜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던지, 이제 와서 배는 회항하지 않는 건가!라는 여러 생각들은 나중에 미뤄두고 눈앞의 뮤리는 당장이라도 감정이 폭발할 것처럼 잿빛 머리는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수단이 없었다. 황급히 끌어안아 그 작은 머리를 두 팔로 품었다.

『알았겠습니다! 알았어요!』

 침착하게!
 그 직후, 뮤리는 팔을 풀더니, 얼굴을 들어 세웠다.


『진짜!? 진짜로!?』

『정말, 정말입니다. 그러니 진정하세요ㅡ』

 귀와 꼬리가 나와버렸다!
 이쪽의 마음속 외침을 무시하고, 뮤리는 눈을 부릅뜨고 만연에 미소를 가득 지으며 늑대가 먹이를 덮치 듯 안겨왔다.

『오라버니 진짜 좋아해! 고마워!』

 정말 기분이 좋은 것인지, 머리색과 같은 짐승의 귀와 꼬리가 쫑긋쫑긋, 살랑살랑 바삐 움직인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사공을 바라보자, 감추고 있던 것을 속 시원히 내보여서 후련함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이상한 기분이 든 건지 배 뒤편에 앉아 작은 술통을 열고 있었지만 이쪽을 보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간에 이 자리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행상인과 늑대의 이야기는 실화이고, 그들의 외동딸인 이 소녀는, 평소에는 귀와 꼬리를 자유롭게 드러냈다 숨겼다 하기에 사람과 전혀 번함이 없지만, 흥분하거나 놀라면 의지에 관계없이 숨겼던 짐승의 귀와 꼬리가 드러나는 난감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뮤리, 뮤리...』
『후후후.... 응?』

 아직 눈물이 채 메마르지 않았지만, 이렇게 기쁘게 웃고 있다.
 감정이 풍부한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사려 깊기를 바란다.

『나와있어요, 나와있다고요.....』

 속삭이며 이야기하자, 그제야 눈치를 챈 듯하다. 당황한 듯 고양이가 얼굴을 씻을 때처럼 자신의 머리를 부랴부랴 쓰다듬었다. 꼬리도 재빨리 숨겼기에 뱃사공은 눈치채지 못한 거 같다. 긴장이 풀리고, 목에 힘을 빼자 갑자기 뒤통수가 배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재빨리 일어나려 했다.

『뮤리』
『응?』

 뮤리가 이쪽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는 명백한 가짜다. 분노가 서린 이쪽의 목소리가 들리면 언제인가부터 보이게 된 여자의 웃음이다.

『물러나세요.』
『.... 네에』'

 좁은 배위에서는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언질을 받았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재빨리 알아듣고 비현실적인 미소를 감췄다.

『정말이지...』

 한숨을 쉬며 일어서려 하자, 뮤리가 손을 빌려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흩트려놓은 모피를 정리하고, 나무 통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원래 송진이 들어가 있던 나무통은 강렬한 탄내가 났다. 후각이 발달한 뮤리가 이 냄새를 참고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결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 아이는 로렌스와 호로의 딸이다. 여행을 데려다주지 않았다고 홀짝홀짝 곰의 굴에서 울고만 있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거죠?』

 모든 짐을 정리하고 물었다.

『헤헤... 가출해버렸어.』

 변명하는 것 같으면서도, 변명하지 않은 뮤리는, 말괄량이 소녀의 모습으로 고개를 으쓱하면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배는 이제 되돌릴 수 없다. 험한 산속을 흘러가는 강은, 양쪽에 높은 벼랑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바위가 가득한 장소다. 물론 도중에 정박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제대로 된 길이 뻗어 있을 리가 없다. 영주가 건설한 강의 관문이라면 여행자가 이용 가능한 산길도 건설되었겠지만, 장소에 따라서는 뇨히라의 정 반대 방향으로 향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이 지방은 아직도 겨울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눈이 거세고, 날씨는 언제나 짓궂다.
 여자 아이 혼자서 그 얇은 다리로 긴 거리를 걸어가게 할 순 없다. 지금 돌려 보낸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은 분명하기에, 뮤리와 마주 앉은 후 큰 한숨만 내쉬었다.

『그나저나, 그 옷은 뭐죠?』

 얌전히, 그리고 다소곳이 앉은 뮤리는 순식간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귀엽지? 헬렌 씨가 만들어 준거야. 지금 남쪽 지방에는 모두 이런 복장을 하고 있을 거래.』

 뮤리는 온천장에 드나들고 있는 인기 있는 무희의 이름을 언급하며 말했다. 뮤리는, 토끼 털가죽으로 만든 케이프를 두르고, 어께에는 살짝 부풀어 오른 장식이 달린 셔츠를 입었으며, 곰 가죽으로 보이는 코르셋을 하고 있다. 자신의 지식이 확실하다면 10여 년 전 궁중 귀족이 입는 형태에 가깝다.
 그러나, 가장 머리가 아팠던 건, 그 아래의 모습 때문이었다.

『헬렌 씨처럼 살집이 없는 것이 좀 아쉽지만…. 헤헤, 어때?』

 뮤리는 길게 뻗은 다리에, 원통 모양으로 꿰맨 아마색 포를 쫙 달라붙게 입고 있었다. 그 천의 위에 겹쳐진 바지는 대담한 위치까지 잘라내어 무척이나 짧았고, 어떤 이유에서건 다리를 보이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여행용인 단단한 뼈 구두마저 실용적인 이유가 아닌, 가느다란 다리의 선을 강조하기 위해서 신은 것만 같았다.

『저기, 뭐부터 이야기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젊은 여자가 그렇게 다리를 보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안 보여? 이게 발끝까지 제대로 덮고 있거든?』

 가늘고 긴 다리를 덮어주는 천을 잡아당기면서, 그렇게 말하는 뮤리의 모습이 묘하게 선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자, 재빨리 헛기침을 했다.

『피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땋은 머리와 삼베로 만든 스커트를 입고 있던 마을에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여행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춥지 않나요?』
『괜찮아. 헬렌 씨가 그랬어. 멋쟁이는 괜찮은 척하는 것이 중요하대!』

 만면에 미소를 띈 채 그런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살펴보면 입술은 약간 푸르스름하고 작고 얇은 다리는 떨고 있었다.
 큰 한숨을 내쉬며, 모피 더미에 손을 뻗어 뮤리의 무릎 위에 조금씩 덮어주었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를 꺼내다 욕조에 집어넣거나, 덫을 놓아 토끼나 다람쥐를 한 무더기씩 잡아 오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습니다만…….』

 마을 남자들 속에 있어도 단연 활발했던 뮤리가, 어느 날 여성스럽게 되었다고 안심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머리를 아프게 만든 것이다.
 온천장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일을 하는 장소다 보니, 언제나 화려하고 떠들썩하다.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서도 제멋대로 구는 사람들이 있기에, 거기에서 금욕과 청빈을 설교한다고 해도 설득력이 전혀 없다.
 아버지인 로렌스도 한 번씩 꾸짖지만, 거기서 조금이나마 반성하는 기색을 내보이면 그 이상 강하게 말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뮤리가 간파했기에 억지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며 걱정했었다.
 결국 최근에는, '왜냐하면 아버지가 기뻐하실까 봐'라며 슬픈 내색을 보이는 기술을 익히며 무력화 하는데 성공했다.
 어머니인 호로는 꼬리를 밟았을 때 보이는 분노가, 로렌스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뮤리도 호로의 눈치는 보고 있었다.
 그러나, 수백 년을 사는 호로는 원래 옷과 관련해서는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며, 오히려 뮤리를 통해서 화려한 의상들의 정보를 전해 듣고 있다. 결국 자신이 챙겨주는 수밖에 없다.

『소녀다운 복장을 착용하세요.라고 말한 건 오라버니잖아.』

 모피더미 속에서, 뮤리는 심통이 나있었다.

『그건 극단적인 이야기입니다. 허리띠 하나 두르고 산으로 들어가는 야만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이야기 했던거죠. 어떤 일이든 절제가 중요한 겁니다. 알겠나요?』 
『… 네에』

 재미없다는 듯이 대답을 하고, 뮤리는 그대로 뒤에 있는 모피더미에 스르륵 쓰러졌다.

『에헤헤, 뭐든 좋아. 그 좁은 마을을 겨우 빠져 나왔는걸.』

 양팔을 벌리고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뮤리는 그렇게 말을 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말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스베르넬에는 사람과 말들이 있으니, 그곳에 도착하면 뇨히라로 돌아가는 겁니다.』

 스베르넬에는 온천장의 물품 구매등을 통해 아는 사람들이 있다. 믿을 수 있는 가게들도 많으므로 뮤리를 맡겨도 안심이 될 것이다. 다만, 뮤리는 굉장히 화낼 것이기에 아랫배에 힘을 주었고 있었으나, 예상과 달리 떼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뮤리?』

 이쪽에서 거듭 되묻자, 하늘을 바라보던 뮤리는 천천히 천천히 눈꺼풀을 닫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순순히 수긍하니, 반대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면 단순히 마을에서 좀 나가보고 싶었던 것뿐일까? 하지만 그 정도 이유로 코가 휘어질 정도로 냄새가 지독한 통속에서 숨을 참겠다는 결의를 한 걸까? 게다가, 떠나는 날까지 1주일간 말 그대로 달라붙어서 온갖 불평을 늘어 놓았던 것이다.
 진의가 의심스러워 슬쩍 바라보았지만, 뮤리는 모피더미 속에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후아~….하암. 날이 새기 전부터 준비해서 그런지 졸리네….』

 뱃속에 어떤 꿍꿍이를 숨겼는지, 조금도 알아차릴수가 없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뮤리가 모든 것이 귀찮고 성가셔 하는 걸까. 그 뻔뻔함도 보통이 아니다. 자려고 마음 먹으면, 당장이라도 잠들어 버리는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모피의 틈새로 이미 숨소리가 들리고 있다.
 당해낼수 없다니까,라며 한숨을 쉰후 뮤리의 머리 위에 올려진 모피를 조심스레 덮어주었다. 조용히 잠들어 있는 얼굴은 기특하고 귀엽지만, 귀엽기 때문에 마음 고생이 끊이지 않았다.  
 따듯하게 잠을 자게 끔, 대충 모피를 덮어주고 나니, 뱃사공이 긴 장대 끝을 나무잔 손잡이를 걸어서 이쪽으로 뻗어왔다. 새콤달콤한 향기를 가진 구즈베리 과일주였다.

『날이 새기 전, 마을 회합실에서 선잠을 자던 내게 왔었지.』

 그것이 뮤리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은 금방 알았다. 물론 뮤리의 계획에 동참한 이 사공을 비난 할 생각은 없다.

『배에 태워 주지 않으면 죽을 거라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어. 달빛 때문인지 몰라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금빛 눈을 보고 있자 하니, 이건 진심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네.』

 단맛보다 신맛이 강한 술을 마시자, 웃음도 굳어버렸다. 여행에 데려가라고 다가오던 뮤리가 어느 정도의 박력을 보였는지는, 이번 한 주 동안 내내 맛보고 왔다.

『뭐, 방랑의 여행이라든지, 사연이 있는 도피 같은 건, 이 일을 하다 보면 이따금 볼 수 있거든. 손을 빌려줘도 될지는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지.』
『그렇다는 건, 괜찮다는 판단을?』
『그야, 길동무가 강직한 청년과 함께라면. 다만 예상보다 딱딱하고, 화를 내지 않을까 불안했네만』

 미소 짓고 있는 사공의 말에 한숨만이 나왔고, 새콤한 술을 입에 머금다 어깨를 늘어트렸다.
 어떻든 간에 뮤리는 스베르넬에 도착하면 돌려보내야 한다.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단호한 태도로 그렇게 해야 한다. 뮤리는 자유분방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며, 손님이 부추기면 무희들과 함께 이쪽이 허둥댈 정도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딸이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한 구석도 있다. 서서히 성장하며, 가슴이 덜컥할 정도로 어머니인 호로와 닮았지만, 진정 닮은 것은 겉모습이 아니다. 똑같다고 한 것은, 야단법석인 모습 사이에서 현랑이라고 불리며 추앙받던 어머니와 동일한, 운명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이지적인 눈 쪽이다.

『하지만 남매일줄은 몰랐어. 틀림없이 사랑하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그 기대는 빗나갔구먼.』
『피로 이어진 남매는 아닙니다. 신세를 진 온천장 주인의 외동딸이죠. 울음소리를 들으며, 기저귀를 갈아준 적도 많습니다.』

 뮤리는 최근까지 자신을 진짜 친오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호로와 로렌스가 자신을 단순히 아랫사람으로서가 아닌, 가족으로 대해줬다는 뜻이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뭐, 이만큼 활기찬 소녀와 함께라면, 긴 여행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데.』

 뮤리를 빨리 마을로 돌려보낼 것이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조용하고 단조로운 여행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활발한 것은 상관없지만, 어떤 일이든 적당히 했으면 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 강의 흐름처럼 말이야.』

 뱃사공이 웃으며 잔을 가볍게 내밀자, 거기에 맞춰 내밀었다. 그리고 무사히 도착하기를 신에게 기도한 것이었다.









 몇 개의 관문을 지나온 배는, 그때마다 멈추고 화물을 검사받은 후, 세금을 냈다. 낮잠에서 깬 뮤리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었는데, 호기심에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이, 뜻밖에 조용했다. 태양이 노랗게 변해갈 무렵, 주변 풍경도 변해가고 있었다. 산악 지형인 건 마찬가지지만, 눈의 양이 줄었고, 자갈이 많은 강변이 늘어나며, 때때로는 강을 따라 길이 생기기도 했다.
 유속도 완만해진 강을 크게 우회한 후, 언덕을 돌아서자 눈앞에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 본 것과는 다른, 크고 번화한 관문이었다.

『우와 굉장해!』

 넓은 강변에는 수많은 화물이 줄지어 있다. 화물들은 강을 타고 실려 올라가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머물거나, 더 내려가면 보이는 다음 관문으로 향할 것이다. 선창의 입구에는 갑옷을 입은 병사가 창을 들고 야간 순찰을 위해 화톳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선창에는 오늘의 항해는 끝났다며 배를 묶고 있는 사람들과 이미 배 위에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강에서 두 번째로 큰, 하피리시 경의 관문이다.』

 사공이 배를 선창에 대자, 구면인 다른 사공들이 인사를 건넨다.

『두 번째? 이게 두 번째야?』

 강변 너머에는 여관이 두 개 정도 보였는데, 처마 끝에는 의자와 긴 테이블이 나와 있고 밤의 소란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답답한 시벽(市霹 : 유럽의 중세 도시 등에서 볼 수 있는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에서 벗어났기에, 꽤 느긋하고 대범해 보인다.
 그 곳에서 웃음소리와, 누군가가 가져온 악기의 음색이 들려오자, 뮤리는 좀이 쑤시는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관문은, 이 강 아래로 이틀 밤을 더 가야 볼 수 있다. 그 관문 옆에 있는 집은 저런 집이 아니야. 훌륭한 종루가 달린 석조 요새지. 강 건너편에는 큰 돌로 만든 탑이 있어서, 거대한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위에 연결된 고리 밑을 지날 때는 마치 지옥의 심판을 받는 느낌이라 두근두근해.』
『사슬?』

 뮤리가 어리둥절해 했다.

『사슬로 이어졌는데, 배가 통과 할 수 있어?』

 수수께끼를 즐기며 웃고 있는 사공의 모습에, 궁금증이 솟구친 뮤리는 이쪽을 향해 도움을 청해온다.

『그게 목적이에요.』
『그렇지. 그곳에서는 바다까지 한순간이니까. 망망대해에서 온 해적들이 내륙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해야 할 때 쇠사슬을 떨어트리면서 방어를 하는 거야. 또 해적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지. 마을에 쳐들어오면 이 쇠사슬에 묶어서 노예로 팔아버린다는.』

 지금 바로 머리 위에 쇠사슬이 있다는 듯이, 뮤리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해…. 적!? 해적!? 해적이 그 해적을 말하는 거야!?』

 산꼭대기에 올라가도 사방이 산으로 이어진 뇨히라에서 자란 뮤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다.

『정말 대단해! 오라버니, 해적이래! 해적!? 진짜!? 쇠사슬로!?』

 배 위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뮤리의 모습에 주위의 사람들은 기이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산속에서 막 내려온 소녀를 향해, 지금 당장에라도 해적으로 변신할 것만 같은 외모를 졌지만, 아끼는 손자의 모습을 보고 미소짓는 노인의 모습에 가깝다.

『대단해, 대단해! 오라버니도 바다까지 가지? 갈 거지?』
『안 갈겁니다.』

 그러나 이쪽은 일부러 차갑게 대했다. 더 흥분한다면 귀와 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바깥 세계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 뇨히라로 돌려보내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해적이 내륙까지 오는 일은 드물고, 저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뭐, 그렇지. 단순한 위협…. 혹은, 여기는 해적이 노릴 정도로 중요한 땅이라는 허세인 셈인 거지. 만약 강을 내려오거나, 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데, 머리 위에 거대한 쇠사슬이 쳐져 있으면 누구라도 간이 쪼그라들지 않을 수가 없겠지?』

 뮤리는 그런 설명에 하나하나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을 내뱉었다.

『밖의 세상은 너무 복잡하네.』

 오오, 신이시여, 라는 말이 이어 나올 정도로 고지식한 말투를 듣자,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다만, 마음을 늦춰선 안 된다. 가능한 한 차갑게 대하고 정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뮤리, 오늘은 이곳에서 숙박합니다.』
『아, 으, 응!』

 강이 흘러가는 끝자락을 차분한 얼굴로 바라보던 뮤리는 정신을 차리고,  당황한 듯 숨겨놓은 짐을 나무통 속에서 꺼내고 있었다.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여행용으로 들고 온 것일 것이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사공과는 여기서 작별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뮤리는 이쪽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헐렁한 주머니를 그럴싸하게 어깨에 매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안녕!』

 걱정 없는 미소를 띤 사공은 배를 젓던 노를 홱 젖히며 응답했다.
 뮤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떠나가는 사공을 향해 다시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구름다리를 따각따각하는 소리를 내어 나아가 강변의 돌들을 제거하고 만든 길을 밟자, 확실히 땅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배를 이용한 여행은 편하지만, 묘하게 긴장된다. 뮤리도 멀미를 하지 않았을까, 문뜩 옆을 보자 표정에 힘이 없었다.

『어지럽나요?』

 뮤리는 고개를 들더니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모처럼 친해졌는데……. 좀 쓸쓸해….』

 작고 가냘픈 데다, 추운 듯한 모습을 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애써 웃음을 짓는 모습에서 어쩐지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친절한 얼굴을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온천장에서도 이별은 늘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손님은 손님이잖아.』
『뱃사공의 입장에서는, 뮤리도 손님 중 한 명일 뿐입니다.』
『….』

 옆을 보자, 뮤리는 이쪽을 바라보며 살짝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여행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즐거운 것만 은 아니다.
 그것을 알게 된다면 얌전히 뇨히라로 돌아가 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축 처진 뮤리를 바라보자, 마음이 아팠다.

『뭐, 그 사공은 이 강을 계속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마을 항구에 간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거에요.』

 뮤리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쳐다본다.
 태양과 같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고마워, 오라버니』

 뮤리의 미소에 또 다시 넘어갈 뻔 했다.
 함께 강가의 여관으로 가서 방을 잡았다. 사실은 가장 저렴한 어부들의 숙소를 빌리려 했지만. 뮤리가 있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부분은 앞으로 절약해야 한다.
 들고 있던 짐들을 풀고 있었는데, 나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뮤리가 힘차게 소리쳤다.

『오라버니! 밖에서 고기를 굽고 있어!』

 뇨히라에서 자란 뮤리는 그렇지 않아도 연회를 무척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상당히 좋아하는 데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면 감당하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뮤리에게 소매를 끌려 밖을 내다보니, 그곳엔 돌로 만든 부뚜막에서 크고 아름다운 돼지를 통으로 굽고 있었다.

『응? 응? 돼지 구이 통구이네요. 대단해요. 오늘 축제인가 보네』

 떠들썩함에서는 뇨히라도 지지 않지만, 산속에 위치한 땅이기에 물자 유통에 한계가 있다. 사슴이나 토끼는 산에서 잡아 올 수 있지만, 돼지 같은 경우에는 고급스러운 수입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더군다나 통구이를 만드는 날은 보기가 쉽지 않다.
 오, 오 하며 들떠있는 뮤리를 뒤로 한 채, 오늘 저녁 식사는 말린 고기와 불에 볶은 콩만으로 해결할까, 라고 생각한 순간,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술잔을 나누는 나그네와 상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외로이 앉아있던 이가 이쪽을 살짝 올려다보더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저기, 오라버니, 조금만이라도 좋으니까…. 응?』

 라고 조르는 뮤리에게 지갑에서 동전을 몇 개 꺼내 쥐여주었다.

『두 사람 몫의 식사를 사오세요. 조금이겠지만, 돼지 통구이도 약간 살 수 있을 겁니다.』
『음…. 아, 응』

 이 지방에서 쓰이는 딥 동전이라고 불리는 화폐를 손에 올려놓은 뮤리는 살짝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오, 오라버니는? 안 갈 거야?』
『기도와 성전 낭송이라는 일과를 소화해야 합니다. 어떻게, 함께하실 건가요?』

 뮤리는 금방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려 들어가면 이기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건지 반대쪽에 위치한 문으로 향했다.

『그럼 좀 사 올게!』
『술은 안 됩니다.』
『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뮤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심통이 잔뜩 난 채로 방을 나갔다.
 정말이지, 라며 한숨을 내쉬고 나서 밖을 내다보자 통구이 앞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고 있는 뮤리가 별안간 이쪽을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인파 속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무희들로부터 직접 전수 한 신기한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다. 뮤리는 정말로 사람들 사이에서도 돋보인다. 마치, 윤곽을 따라 구멍을 뚫어 놓은 것처럼, 그곳만 희미한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진짜 여동생처럼 귀여워해 왔기에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까.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미소를 삼키고, 나무창문을 닫았다.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바로 전에 광장에서 이쪽을 올려다봤던 나그네가 있던 것이었다.









 작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다지 키가 작은 편은 아니다. 체격은 단단하지만, 체구가 작거나 가는 것은 아니며 인상이 어떻다고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가끔 밀정 같은 일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드를 쓰면 젊은 청년으로 오해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주름이 나 있는, 나이가 들고 차분해 보이는 남자다.

『놀랐습니다. 이런 곳에서 만나리라곤.』

 의자를 권하자, 남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래 머물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몰래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 죄송하군요.』
『아아, 그 아이는 뇨히라에서 무작정 따라온 겁니다. 짐에 숨어있었거든요. 그것도 나무통 안에 숨어서 지독한 송진 냄새를 참으면서.』
『네?』

 남자는 놀라워하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 통은 정말 냄새가 심하죠. 저도 몇 번인가 숨어본 적 있어 봤지만.』

 역시나 인상처럼, 거친 일을 많이 해본 것 같다.
 남자는 데바우 상회라고 불리는 북쪽 지방 일대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든든한 대상회의 연락원이었다. 데바우 상회는 교황과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 윈필왕국 측에 가세하고 있다. 곤경에 빠진 왕국을 돕고, 상업상의 특권을 끌어내기 위함이 목적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윈필 왕국과 나와 같은 왕국의 협력자 간의 연락망을 담당하고 있다.

『웃을 일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왜 이곳에? 스베르넬에서 보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게 말입니다, 레노스행은 취소되었다는 것을 전해드리기 위해 여기서 기다렸습니다. 대신, 아티프로 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아티프요?』

 그곳은 낮에 탄 배의 사공이 말했던, 해적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쇠사슬을 걸어놓은 관문이 있는 도시의 이름이었다.

『레노스에서는 꽤 떨어진 곳이군요.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뇨히라에서 흘러나온 강은 남쪽으로 조금 내려간 후, 진로를 바꾸고 서쪽으로 향한다. 강은 산맥 틈새를 꾸불꾸불 지나간 후, 도란 평원이라고 불리는 평지를 지나,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레노스는 남서쪽을 향해 여러 산을 넘어서면 도착할 수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레노스에 위치한 교구의 대주교와 가진 협상이 시작부터 결렬되었습니다.』
『아….』
『하이랜드님 께서 자신이 직접 해결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만,  북쪽과 남쪽 지방을 잇는 중요한 지역이니 라포크 백작이 대신 담당했다고 합니다.』

 레노스라는 마을에는, 자신이 어릴 적엔 교회가 없었지만, 현재는 북녘땅에서 신앙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다른 교회의 주교를 임명하는 권한을 가진 대주교가 주교 지팡이를 휘두른 것이 어언 10년째가 되었다.

 하지만, 낙담한 것은 중요했던 레노스에서의 협상이 잘 안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이랜드님 께서는 상당히 허탈해하실 겁니다.』

 그 사람이 걱정되었다.

『뭐, 그분의 장점은 포기를 모른다는 것이죠.』

 하이랜드는 높은 신분의 사람으로, 윈필 왕국 왕족의 혈통을 잇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연락원으로 온 이 남자는 마치 친구를 대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불경스러운 행동이었겠지만, 남자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이랜드는 이상하리 만치 꾸밈이 없으며 곧은 마음씨의 소유자로, 무심코 친구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다. 자신이 윈필왕국의 도움이 되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올바른 이치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뇨히라의 온천장에 몸을 담그러 온 하이랜드에게 직접 설득당한 일도 컸다.

『그럼, 아티프에서 다음 협상을? 그렇지만 레노스 다음이 아티프라는 말은….』
『레노스에서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며 위축된 거 같다는 말씀?』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티프 교회는 주교가 있다고 하지만, 새내기 중의 새내기입니다. 다만 약소한 주교들이 있지만, 마을은 교역의 성공으로 인해 점점 성장하는 상황이죠. 그곳을 설득할 수 있다면, 북쪽 바다의 3분의 1은 우리 편으로 확보할 수 있는 셈입니다.』

 북녘땅 구석구석까지 장악하고 있는 데바우 상회에서 말하는 것이니, 거짓말은 아니다. 게다가, 아티프가 어느 새엔가 규모가 커졌다는 등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뇨히라의 산속에 있는 동안, 세상 물정에는 어두워진 듯 하다.

 『또한, 어느 왕국에도 속하지 않는 자치도시이기에, 시작하는 장소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티프가 설득에 응하면, 다른 자치 도시들도 따를 것입니다. 게다가, 아티프에서라면, 요즘 배로 해로를 따라가면 윈필왕국까지 이틀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꽤 멀리 있는 마을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마을입니다.』

 지리에 관해서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세상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자신감은 자신의 과거라는 그릇에 담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하이랜드님과 윈필 왕국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배에 탄 이상, 저희의 이득이 달려 있으니까요.』

 상인 같은 남자의 말투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그러나 사실이기도 했다.

『콜님 께서도, 미래에 왕가의 전속 사제 자리를 원하시는 건가요?』

 말이 심하다고 하려다, 우물거렸다. 그리고 나온 것은, 자신의 욕심을 인정하는 쑥스러운 미소였다.

『성공해서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교황님의 횡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정책과, 자의적으로 하느님의 가르침이 이용되고 있는 현 상황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하이랜드님처럼 확실한 신앙심에 감동했고, 저런 분이 통치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힘이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 사용된다면 매우 기쁜 일일 것입니다. 게다가….』
『게다가?』
『십일조가 강화된다면, 뇨히라에서 구매하는 다양한 물건들의 가격도 오르겠죠? 반대로 십일조가 폐지된다면, 뇨히라의 온천장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남자는 살짝 놀란 얼굴을 하더니, 이마를 빡! 하고 두드리며 웃었다.

『콜님은 수도원에 칩거 중인 학승과는 다르시네요. 참으로 든든합니다. 오른손에는 천칭을, 왼손에는 성전을 들고 계시다니.』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죠.』
『그건 차차 증명해 내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각각의 인물들이 원하는 이익들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자신도 그 일에 참여했지만, 하이랜드에게 대가 없이 협력을 해준 것은 아니다. 비록 대가가 없어도, 라고 과장되게 이야기했지만 말이다.
 고급 손님만 사용할 수 있는 동굴 내부의 온천에 몸을 담근 채, 교리문답을 원하던 하이랜드를 대하던 장면은 지금도 또렷하다. 하이랜드의 신앙심과 열정은 진짜로, 자신의 나라가 교황의 욕망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속상해했다. 예로부터 높은 자리 인간들의 입장에서 성직자는 자신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자신의 배움이 큰 인물을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하이랜드님의 원대한 계획도 기대되네요.』

 남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하느님의 책」을 만들겠다는 것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설렘이라는 감정을 되살려 주는 대사업입니다. 콜님에게 기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과찬이십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말이었지만, 남자는 껄껄 웃고 있었다.

『일단 여러분들의 체류는 저희 데바우 상회의 상관에서 맡겠습니다. 필요한 도구들도 바로 갖춰놓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저도 다음 장소로 가봐야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배에 올라타서 다음 마을로 가야 하거든요. 하이랜드님께서도 해로를 통해 이미 아티프에 도착하셨을 겁니다. 그럼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남자는 작은 미소를 짓고 방을 나섰다.
 쾅, 하고 닫힌 문을 향해 큰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라,
 자신은 많은 협력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었고, 이것은 신앙과 관련된 진지한 문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본래의 임무를 잊어버린 교황과, 그에 맞서는 윈필왕국.
 거대한 사건에 맞서는 흥분과 모험에 대한 동경이 자신 안에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우선 아티프에서 하이랜드의 버팀목이 되자, 건방진 생각이지만 도움이 되자, 라는 결의를 다지던 그때였다.

『아~ 오라버니~!』

 문 저편에서 뮤리의 목소리가 들리며, 엄숙했던 분위기가 깨졌다.

『문, 열어~』

 쾅, 쾅, 하는 소리는 문을 발로 차는 소리일 것이다.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문을 발로 차는 건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아아, 좀 비켜, 비켜봐!』

 뮤리는 잔소리를 귓등에도 듣지 않은 듯, 이쪽을 밀치며 방으로 뛰어들어오더니, 양손 가득 안고 있던 물건들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손이, 손이 뜨거워! 화상 입을 거 같애….』

 후후, 하며 입김을 불어 대고 있지만, 이쪽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뮤리? 왜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 온 거죠?』

 건네준 동전은 딥 동화라고 불리는, 이 일대에서는 최소 단위의 통화다. 두 개나 세 개로는 1인분 정도의 식사를 살 수 있기에, 고작 돼지고기 몇 조각과 오래된 마른 빵을 사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뮤리가 안고 온 것은 큰 종이 봉투와 허벅지 정도 크기인 훌륭한 빵 3개. 아무리 생각해도 살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이 광경의 절정은 들고 있던 자그마한 술통이었다.

『술은 사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무시하는 것도 귀찮아졌는지, 뮤리는 뾰로통한 모습으로 말했다.

『사지 않았어.』
『사지 않아?』
『받은 거야.』
『그렇다는 건……. 설마, 이거 전부를?』

 그러자, 뮤리는 금세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돼지고기가 굽는 동안 기다리면서, 춤을 췄거든? 음악에 맞춰서 추니까 주위 사람들이 진짜 좋아했어!』

 자신의 양 볼에 손을 얹고, 즐거운 듯이 몸을 비틀며 핑그르르 돌자, 귀와 꼬리가 나타났다. 활기찬 것을 좋아하는 딸이고, 뇨히라의 온천장에서는 무희와 함께 춤추는 것을 즐겼다.
 그 모습에, 한숨을 쉬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림과 동시에, 탐스러운 꼬리를 흔들고 춤을 추는 뮤리의 머리를, 손으로 꽉 눌렀다.

『뮤리, 앞으론 그런 일은 자제하세요.』
『에?』

 손바닥 밑에서 멍하니 이쪽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뭔가를 눈치챈 듯 입을 열었다.

『아……. 그게, 구두째로 테이블 위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건 나도 알아. 그, 나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귀와 꼬리가 힘없이 늘어졌다.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자,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춤을 추는 무희가 있었는지 확인했냐는 거지?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그 정도는 알고 있다며 가슴을 펴면서 뮤리는 주장했다.
 뇨히라에선 춤추는 자리가 열리면 밝고 천진난만한 뮤리가 가장 빛났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손님은 직업이 춤을 추는 것인 무희에게 관심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고기, 빵 등을 주면 맛있게 먹는 순진한 뮤리만 상대하게 된다. 그런 모습에 자신의 영역을 침해한 것으로 생각한 무희들과 싸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뮤리는 그 일을 말하는 것일까. 뮤리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손을 가볍게 말아 밀쳤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

 뮤리는 일부러 그러는 듯 손을 자신의 머리로 밀었는데, 반항하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말을 순순히 잘 들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며 피로감이 느껴지자 나무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이곳은 뇨히라가 아닙니다. 여자가 취객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 겁니다.』

 바비큐로 구워지던 돼지는 완전히 뼈만 남았고, 술을 즐기던 손님들은 팔씨름하고 있었다.
 이 관문에 모이는 이들은 모피나 목재 등을 매매하는 상인이나 짐을 나르는 남자들, 배를 부리는 사공, 얼마 되지 않지만, 용병들까지, 살짝 거친 이들이다.

『위험?』

 그러나, 뮤리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멋진 춤에 마음을 뺏기면, 꽃을 들고 한쪽 무릎을 꿇는 남자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뮤리는 언제나 무방비인 것처럼 보인다.

『아, 그런 거라면 괜찮아.』

 뮤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침대 위에 내던져진 음식에 살며시 다가갔다. 큰 종이봉투에서 꺼낸 것 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정말 맛있어 보이는 돼지고기였다.

『헬렌 씨가 많은 이야기를 알려줬어.  게다가, 여자의 가치는 달라붙는 남자의 숫자로 결정된다. 엄마도 그렇게 말하던걸?』

 손가락으로 집은 돼지고기를 먹다가,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빨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댄다.
 뇨히라에선 귀족의 젊은 자제들이 친구들과 함께, 산에서 사냥하다가 질리게 되었을 때 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산에서 사냥을 멈추고 난 후에는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은 거의 없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뮤리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자들이 말을 거는 이유는 뻔하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며느리로 데려갈지도 모른다, 라는 경고를 해줘도 듣지 않는다.

『정말이지….』

 물론, 이 정도 나이 또래의 딸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10, 20년도 더 이전에 느낀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만큼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를 두 점째 먹기 시작한 뮤리는 드디어 설교시간이 왔구나, 하며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이미 알아차렸을 때는 늦습니다. 그게 좋을까요. 뮤리. 당신은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모릅니다. 겸손하라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이 당신을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뮤리는 도도한 모습으로 침대 위에서 고기 덩어리를 들고, 빵을 찢은 후 그사이에 끼는 것이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탓인지, 이쪽으로 돌려진 작은 엉덩이 위에서, 회색빛의 탐스러운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듯.

 『듣고 있나요?』
 『듣고 있어요. ㅡ. 자, 이거, 오라버니꺼』

뮤리가 미소와 함께 내밀어 온 것은, 역시나 허벅지 정도 크기의 큰 빵이었다. 거기엔 충분한 양의 고기가 끼어있었고, 그 위로 치즈가 잔뜩 얹어져 있었다.

『……. 저는 안 먹을 겁니다.』
『어? 그러니까 오라버니는 가냘픈 거야!』
『가, 가냘프….』

 사냥꾼이냐 용병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근육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살짝 상처를 받았다. 게다가, 뮤리가 다시 손에 쥔 빵은 자신에게 전달 된 것보다 더 크기에,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잘먹겠습ㅡ니다.』

 뮤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푹, 하는 소리를 내며 빵을 씹었다. 가냘픈 몸 어디에 저 많은 빵이 들어가는지, 기쁜 표정이 얼굴 한가득 뿜어져 나오며 귀와 꼬리를 팔딱팔딱 흔들고 있었다.

 『정말이지....』

 뮤리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자신도 빵을 입에 넣었다. 이 세상에는 즐거운 일밖에 없다, 아름다운 경치뿐이다,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고 확신하는 듯한 모습에, 살짝 부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뮤리가 그 천진난만함을 잃어버리고,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대로 쭉, 어느 것에도 상처받지 않고 자란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바깥세상을 모른 채, 뇨히라에서 조용히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당신이, 뇨히라에 가는 이야기입니다만,』

 그 이야기를 꺼내자, 허겁지겁 빵을 먹던 뮤리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글쎄……. 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는 척 하지 마세요.』

 이대로 함께 여행하는 것이 합의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뮤리는 바보가 아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지적하자 입을 다물더니 표정을 바꾸고 빵을 물어뜯고 있는 것이었다. 기특했던 모습은 배 위에 놔두고 온 것만 같다.

『싫어, 돌아가지 않을 거야.』
『안됩니다.』

 단호하게 이야기하자, 뮤리의 꼬리가 빵빵하게 부풀어져 간다.

『스베르넬까지 간 후, 그곳에서 안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돌려보낼까 했는데,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내일 바로, 파발마를 띄워 뇨히라로 편지를 보내고, 누군가가 데리러 오게 할 겁니다.』

 이맘때쯤에는 뇨히라에 체류 중인 손님들이 많아, 모든 이들이 정신없이 바쁘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신이 직접 데리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뮤리를 데리고 눈으로 뒤덮인 산길을 걸어간다면 이틀에서 사흘은 걸린다.
 그러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하이랜드가, 이미 아티프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에, 빨리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지금 로렌스씨와 호로 씨가 뇨히라에서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로렌스는 반미치광이가 되어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현랑이라 불리며 그 참모습은 사람을 한입에 삼킬 만큼 거대한 늑대이자, 뮤리의 어머니이기도 한 호로가 어두운 밤을 틈타 마중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뮤리는 어머니인 호로에게 만큼은 절대복종을 하므로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든 직후였다.

『걱정따윈 하지 않아.』

 뮤리는 뾰로통한 듯 말했다. 부모의 간섭이 귀찮은 것은, 이 나잇대에서의 특징일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준다고 해도 반발할 테니,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경전 속에 나오는 교훈을 머릿속에서 찾고 있었는데, 뮤리는 빵을 물더니 비어있는 양손으로 가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흐아으브다으으』
『네? 무슨 소리죠?』

 물음과 동시에 뮤리가 가슴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어, 아…. 그건!』

 뮤리는 뾰로통하지 않았다. 어이없어 했다.
 뮤리가 꺼낸 것은 끈으로 연결된 작은 자루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물건이지만, 이쪽을 침묵시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물건이다.

『우물…. 흠. 내가 어머니의 눈을 피해 가출 따위를 할 리가 없잖아?』

 그 자루는, 뮤리의 어머니인 호로의 소지품이었다. 손바닥에 가볍게 들어가는 작은 물건으로, 호로는 항상 그것을 목에 걸고 있었다. 왜냐하면, 호로는 보리에 깃들어, 풍요를 관장하는 존재니까.

『어머니께서 오라버니의 일을 논의하면서, 보리를 조금 나누어 이 자루에 담아 주셨거든. 오라버니를 잘 부탁해, 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 이것만 있으면 만일의 경우에 오라버니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

 그 말에, 세상이 뒤집어진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뮤리를, 이 아니라, 뮤리가 자신을?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뮤리는 똑바로 이쪽을 응시한다.

『대체, 아까 그 이야기는 뭐야?』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눈이었다.

『아까, 그?』

 반격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듯, 최대한으로 부드럽게 되물었지만, 뮤리의 꼬리털은 곤두서고 있었다.

『방에서 모르는 사람과 만났잖아!』
『엿들은 건가요...』
『돌아왔는데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밖에 있었을 뿐!』

 그렇게 말은 했지만, 뮤리는 짐승의 귀를 쫑긋 세웠을 것이다.

『그보다! 오라버니는 역시 먼 나라에서 성직자가 되려는 게 아니었어! 거짓말쟁이!』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사람보다 조금 더 두드러진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뮤리는 목구멍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고, 꼬리의 털도 오래된 솔처럼 곤두서고 있었다.
 온천장의 주인인 로렌스와 호로에게는 여행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뮤리에게는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뿐 더러, 오히려 더 까다롭게 될듯하여, 조금 먼 곳에 도움을 주고 오겠다는 정도의 설명밖에 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오라버니는 그 금발에게 속는 거야!』

 하이랜드는 왕가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깜짝 놀랄 만큼 기막힌 금발의 소유자다. 뮤리는 이상하게도 그것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재에 은가루를 섞어 놓은 듯한 기이한 색상의 머리카락에 애착이 있으니, 적대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속이지 않았습니다. 하이랜드님이 하시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냐, 속고 있는 거야. 오라버니는 좋은 사람이라서, 그 사람이 구워삶아 먹을 거라고!』

 좋은 사람이라는 부분은, 칭찬으로 받아둔다.

『그렇다면, 어떻게 속이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 말을 하며, 뮤리가 만들어 준 빵을 한입 베어 먹었다. 불덩어리 같은 뮤리는 무작정 자신이 옳다고 하기에, 자신이 져줄 수밖에 없다. 설득하려고 해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말이든 떠들게 해놓은 후 피곤하게 만들 방법을 짜낼 때까지, 엎드릴 수밖에 없다.
 지난 일주일간의 맹공도 그렇게 견뎌냈다.
 물론, 뮤리도 그 전략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쪽을 노려보며 손에 있던 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은, 체력을 키우는 모습으로 보이진 않았다.

 『오구, 와구....음냐. 속고 있어. 그 금발은 왕국에서 높은 사람이지? 근데 그런 사람이 왜 오라버니에게 의지하는 거야?』

 자신은 본디, 겸손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그 겸손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뮤리의 지적을 달게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양보할 수도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저는 이전에, 뇨히라에 찾아오는 학자들과 고위 성직자였던 고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뮤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는…….』

 자화자찬하는 것이 거북하지만, 그럼에도 말할 수밖에 없다.

『저는, 그 정도 되는 인물입니다!』
『핫』

 그러자 뮤리는 반쯤 감은 눈으로 이쪽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라고 순진하게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던 동생의 눈이 아니다. 그것은 술에 취해 호언장담하는 손님을 바라보는 듯한, 남자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무희와 같은 눈이다.

『저기, 오라버니. 나도 알고 있거든. 성직자는 일단 높은 위치의 사람이라는 거. 근데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건, 위엄이 있고 훌륭한 사람들을 말하는 거지. 오라버니와 같은 사람과는 달라. 』

 한 번도 산골 마을에서 나오지 않았던 아이의 말투, 그대로였다.

『하아……. 좋습니다, 뮤리. 성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의 말씀을 받들었던 선지자가, 어느 마을의 생가에 갔을 때 일입니다. 선지자의 친척은, 선지자를 향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신이 말씀을 전하기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런 거창한 말을 하는 것을 그만두어라. 네가 평범한 사람의 자식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자, 선지자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물건을 잡고, 눈에 가까이 대보거라. 가까울수록, 물건의 올바른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

 이런 것을 보면, 성전은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책이다.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하던 때였다.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잖아.』
『……. 예를 들면 어떤 거죠?』

 한숨 섞인 반문.
 뮤리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헬렌 씨를 비롯한 무희들이 놀려대면, 오라버니는 얼굴을 붉히면서 횡설수설하잖아.』
『읏』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차가운 얼음 단검이 날라왔다.

『정말이지, 보고 있으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어. 오라버니는 성전을 자세히 아는 모양이지만, 성전에는 여자와 사귀는 방법에 대한 해석은 없어?』

 가슴에 단검이 박히고, 이리저리 휘저어 진다.
 숨을 쉬지 못하고 있자, 뮤리는 빵의 나머지 부분을 뜯었다. "이런, 이런"이라는 말과 함께 빵을 맛보고 있다.

 『손님 할아버지들은 그 부분, 여자들을 다루는 게 능숙하고, 때론 구질구질하게 구는 법도 알고 있어. 차라리 그런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 던 데, 그게 바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 아닐까.』

 신학을 위해 동서고금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뇨히라에 물을 담그는 동안에는 반라로 있는 무희의 코 밑에서 뻗어있는 노인일 뿐이다. 게다가, 과거를 지적할 순 없지만, 독신으로 지내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조카"나 "조카딸"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더욱 금욕을 고수하고 있다. 자신은 그들보다 더더욱 높은 곳에 도달할 하기 위해서 별다른 차이가 없던 실력을, 남몰래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뮤리의 평가는 정반대였던 거 같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께 말했어.』

 뮤리는 잠깐, 음음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어머니인 호로의 말투를 따라 했다.

『당신은,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여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니까 세상의 절반밖에 보지 않은 거야. 왜냐하면, 세상은 남자와 여자밖에 없으니! 말이야』

 가슴의 통증이 심해지고, 현기증까지 나던 차에, 뮤리에게서 쐐기의 일격이 내려친다.

『지금까지, 오라버니가 손잡아본 여자는 나 말고 없잖아?』

 그 정돈 아니……. 라고 반론하려,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바로 뮤리의 어머니인 호로였다. 그러나 호로는 뮤리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존재. 호로의 손을 잡은 적이 있다고 반박하면, 뮤리는 웃기는커녕, 근심 어린 얼굴이 되어 이쪽을 걱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듣기만 해선 안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은 소녀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라고 자신을 격려했다.

『설사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하이랜드님, 나아가서는 윈필왕국의 입장이 올바르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이 여행을 결심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성에 어두운 것은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금욕의 맹세는 신앙심을 높여주는 것이니까!』

 이 긍지는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금욕의 맹세는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라, 지키고 있는 성직자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괜찮다. 자신은 신앙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고,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뮤리에게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뮤리는 재빨리 남은 빵을 입에 처넣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았다.

『그러니까 내가 오라버니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뭐……. 라고?』
『어머니께서도 걱정하셨어. 오라버니는 굉장히 멀쩡해 보이는데, 여자에겐 툭 하면 약한 모습을 보이니까, 이상한 여자에게 걸리는 게 아니냐고. 볼일을 마치고 뇨히라에 돌아왔을 때, 득의만면(得意滿面)하며, 이상한 여자를 데리고 돌아오는 꼴은 차마 볼 수가 없대.』
『…….』
『어머니는 아버지가 딴 여자랑 눈 맞으면 안 되니까, 뇨히라를 벗어날 수가 없대. 그래서 내가 감시역으로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어.』

 뮤리는 쿠후,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가 정말 무섭네,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어머니의 호로 똑 닮았기 때문이다. 상인으로서는 일류로, 10년 전 북쪽 땅의 변화를 가져다준 큰 사건에서 활약한 로렌스를 어린애 취급하고 그것을 즐기는 현랑 호로가, 이런 미소를 자주 보여주었다.
 뮤리의 꼬리가 살랑 살랑 흔들리고 있어 갈팡질팡하는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늑대 같다. 꿀꺽하고 마른 침을 삼키고 있자, 뮤리가 살며시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말이야, 나도 오라버니가 걱정되거든. 이제 알겠어?』

 머리 한 개 이상의 키 차이가 있기에, 뮤리가 나란히 서면 이쪽의 가슴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정도 높이에서 눈을 치켜뜨며 이쪽을 바라보니, 머릿속에서 조립되었던 어휘들이 우수수 무너질 정도의 마력을 느꼈으나, 다행히도 현실에 머물 수 있었다. 뮤리의 입가에는, 멍청하게도 빵과 치즈 조각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입을 좀 닦으세요.』

 무리는 당황해서 황급히 소매로 싹싹 닦았다. 그리고 힐끗, 하고 이쪽을 봤을 때는 장난을 치기 전 상대를 속이게끔 하는 그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상한 쪽으로만 성장했군요…….』

 푹하고 고개를 숙이자, 뮤리가 발꿈치를 들어 이쪽의 머리를 쓰다듬어 온다.

『올치, 올치. 오라버니를 잘 부탁한다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어. 이제 나에게 맡겨.』
『….』

 나이의 절반 동안 그 울음소리를 듣고, 기저귀도 많이 갈았다. 겨울철에는 얼음이 될 거 같다며 같은 담요 속에 기어들어 왔던 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밤중에 잠자리에 소변을 지려서 흐느끼고 우는 것을 달래주고 뒤처리 해준 것이 몇 번이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뮤리가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인 호로는 여자가 다루어야 할 무기를 초일류로 다루는 이라서, 피는 못 속이다는 느낌이다.
 로렌스가 이 자리에 있다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나도 여행에 동행한 것이 되겠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호로가 끼어있는 시점에서 반대할 수가 없다.
 게다가 뮤리는 자신이 우려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오라버니를 방해하진 않을 거야. 하느님의 말에 대해서는, 나는 상관 안 해.』

 그래도 문제인데, 고대 정령의 피를 이어받은 뮤리가 정말로 있는지 분명치 않은 신을 경시할 권리 을지 없을지 모른다.

『다만, 경솔한 오라버니가 간과한 것들이 있다면, 따끔하게 지적해줄게.』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숲의 패자인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다.

『아, 그래서 말인데, 오라버니』
『....왜 그러시죠?』

 몹시 지친 듯 대답하니, 뮤리는 머뭇머뭇하면서 살짝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가리킨 자리에 있는 먹다 남은 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드세요.』

 뮤리는 큰 빵을 먹었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덥석 물었다. 그런 꼴을 보고 있자 하니, 포기의 웃음이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웃으면 지는 것이다.

『으으에?』

 왜 그래? 라며 빵을 입안 가득 담고 있으면서, 물어오는 뮤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의자를 가르쳤다.

『앉아서 드세요.』

 뮤리는 얌전히 그 말을 듣고, 의자에 앉았다.
 이런 것에만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교활하다. 뭐든지, 알고 있다는 것도.

『하느님, 저에게 힘을 주소서…….』

 자신의 영원한 동반자의 이름을 말하면서 한숨을 그만 쉬어버린 것이었다.


'늑대와 양피지 > 1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가 후기 및 축전  (0) 2017.05.06
서막  (0) 2017.03.2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