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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양피지/1권

서막

(◉◞⊖◟◉) 2017. 3. 21. 23:41






스한 계절의 비는 살짝 달콤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방울을 핥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심부름하고 돌아오는 길에 떨어지는 비를 피하지 못했다.
 이 지역은 곳곳에 초원이 있는 지역으로, 비가 밋밋하게 내린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빗방울들이 꾸준히 떨어지는 정적의 세계다. 가만히 서 있으면 영원히 그 경치에 갇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용하고 평온할 때, 낮잠을 자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방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있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물을 머금은 스커트에 진흙이 튀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달리고, 달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이것이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어슴푸레 안갯속에 목조 건물이 보였다.
 상당히 오래된 듯 기울어져있었는데, 그 얼간이는 좋아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나 열심히 고쳤고 그래서 애착도 있는 건물이다. 그곳에 갇혀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해도 기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는 생각이 든다. 최후에 그 기둥에 안겨 있는 모습은 반해버릴 정도로 멋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작게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빗방울만 떨어지는 날이어서 발소리가 상당히 울려 퍼진 것인지 건물 안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함께 건물을 수리하며 마지막 못을 망치로 쳤던 사람이다. 그 모습을 보자 너무 기뻐 턱을 주체할 수 없었고 보폭도 더욱 넓어졌다. 또다시 빗방울이 입에 들어왔지만, 역시나 달콤했다. 그 달콤함에 이끌리듯 그대로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갔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반드시 받아 줄테니까.
 상대의 가슴팍으로 뛰어올라 숨을 다듬기도 전에 "다녀왔어-."라고 말했다.
 거친 숨소리와 아플 정도로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답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분명 대답해 줄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얼마 전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누구도 없는 이슬비 속. 다시 한번 그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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