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짐마차가 흔들리고 있다. 한겨울의 고비를 넘어가는 날이자 내뱉는 숨이 아직도 흰 시기였지만, 날씨가 맑고 바람도 없어서 석조 건물 안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 깃털이 한 장씩 얼굴 위로 내려오는 듯한 햇살 아래에서 한가로이 누워 있으면 천천히 움직이는 짐마차가 내는 단조로운 소리와 진동 탓에 금방 졸음이 몰려온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나는 두 뺨을 손으로 친 후 몸을 일으켜 크게 기지개를 켰다. 뚜둑, 다닥, 같은 소리가 난다. 오른쪽 어깨에 납을 씌워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밤새도록 모기 눈알을 채집하는 것과 같이 세밀한 작업을 했던 탓이다. 『태평한 모습이야.』 마지막으로 큰 하품을 하고 있자, 마부석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마..
※ 해당 번역본은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가 한국 정발이 확정 되면 비공개로 처리될 예정입니다. 될리가 없지만 서고에는 114권의 책이 있다. 문법학, 수사학, 논리학, 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 고대철학자가 저술한 철학서, 신학서, 성전주해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모험담, 수많은 연대기들…. 로 이루어진 114권 모두를 소개하는 건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모든 책이 이곳에 있다는 뜻이며, 나는 이 모든 책을 읽었다. 그리고 얻은 것은 만족감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세계의 모든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자신이 모르는 것은 없을 것이고, 들은 적 없는 장소도 없을 것이며, 가슴 두근거리는 역사도, 읽은 적이 없는 문장도, 동경하지 않은 영웅도 없을 것이라..
작가 후기 잠들기 전 책을 들었을 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귀여운 생물이 존재해 느긋한 기분을 느끼며 잠든다. 그런 책이 필요해서, 직접 썼습니다. 하세쿠나 이스나입니다. 반쯤 농담이지만 쾌활한 여자아이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을 쓴 건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만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뮤리가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진 경위는 저 자신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같은 달에 출시한 이 책의 원작 시리즈인 『늑대와 향신료 XVIII Spring Log』에 수록될 첫 단편을 쓸 때까지만 해도 뮤리에 대한 내용은 쓰지도 않았고, 설정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 콜과 뮤리가 자신들이 쓴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간접적인 묘사를 쓰는 순간, 그 시점에서 윤곽이 잡히며 작중 편지 너머에 이미 뮤리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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