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밤의 그늘이 드리워진 어둠의 한가운데 손을 문지르며 우물이 있는 정원으로 나왔다. 이곳에서 며칠 동안 끙끙 앓아 잠을 푹 잔 터라, 이처럼 일찍 일어나는 것은 오랜만이다. 머무른 곳은 상관(商館)으로 『시간은 금』이라는 상인의 말이 와 닿았다. 우물 옆, 기대어져 있는 막대기를 사용해 우물 바닥에 붙은 두꺼운 얼음을 깼다. 길어 오른 물은 시릴 정도로 차가웠고, 얼굴을 씻으면 칼로 깎아내는 것처럼 느껴져 졸음이 달아났다. 얼굴을 닦고 차가운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신 후 하늘을 바라보니 웃음이 나올 것 같이 상쾌했다. 언 땅에 무릎을 꿇었다. 모직 카펫을 깔 필요는 없었다. 추위와 고통을 감내해야 신에게 바치는 기도에 뜨거움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공기에 언제까지나 기도를 바..
여행의 날이지만 겨울임에도 드물게 맑았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푸른 하늘이 보이고, 쌓인 눈에는 햇빛이 비치며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북녘 땅에 위치한 온천 마을 뇨히라의 겨울에서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림 같은 멋진 여행의 날이 되었지만, 여기에 운을 더 써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들기도 한다. 그러나 길고 긴 무뚝뚝해 보이는 여행의 외투에 눈을 돌리자 여행을 떠나는 성직자가 되었음을 새삼 느낀다. 이 날씨는 하나님이 내려준 전도의 축복이 틀림없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에는 강이 흐르고, 부둣가가 위치해있다. 환절기에는 온천 목적으로 방문하는 손님들, 돌아가는 손님들로 무척이나 붐비지만, 지금은 화물선 한 척만이 정박해있을 뿐이다. 화물이 ..
따스한 계절의 비는 살짝 달콤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방울을 핥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심부름하고 돌아오는 길에 떨어지는 비를 피하지 못했다. 이 지역은 곳곳에 초원이 있는 지역으로, 비가 밋밋하게 내린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빗방울들이 꾸준히 떨어지는 정적의 세계다. 가만히 서 있으면 영원히 그 경치에 갇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용하고 평온할 때, 낮잠을 자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방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있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물을 머금은 스커트에 진흙이 튀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달리고, 달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이것이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무렵, 어슴푸레 안갯속에 목조 건물이 보였다. 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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